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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축통화란? : 기축통화의 정의,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이유, 대공황과 영국 금본위제 폐지, 브레턴우즈 협정, 닉슨쇼크와 킹스턴 체제, 페트로달러 시스템
    경제 기초 2024. 4. 21. 15:45

    기축통화의 정의

    기축통화를 알아보기 전 환율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환율이란 서로 다른 외환을 바꿀 때의 교환 비율입니다. 외환이란 외국 돈입니다. 외환에는 미국의 달러(USD), 유럽의 유로(EUR), 일본의 엔(JPY) 등이 있으며 주로 환율을 설명할 때 미국의 달러 간의 환율을 말합니다. 국제 시장에서도 환율은 미 달러와 나머지 국가의 통화 간의 교환 비율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대부분의 국제 시장에서는 미국의 달러를 통화 거래 혹은 무역 거래에서의 결제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국제 거래에서 활용하는 중심 통화를 가리켜 ‘기축통화’라고 합니다.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이유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이유는 미국의 달러가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고 달러가 안정적인 이유는 미국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의 정부가 세계 최고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공황과 영국 금본위제 폐지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기 전에는 영국의 파운드가 기축통화였습니다. 1816년부터 영국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은 금본위제도를 중심으로 화폐를 발행했습니다. ‘금본위제도’(gold standard)란 당시 영국 화폐인 파운드에 일정량의 금을 고정해서 유통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당시 해가지지 않은 나라 영국은 많은 식민지를 통해 대량의 금을 확보했고 금본위제도 아래에서 파운드화는 강력했습니다. 또한 영국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전 세계 곳곳에 금본위제도를 확산시켰고 이렇게 파운드화는 100년 가까이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파운드 중심의 금본위제는 1914년 1차 세계 대전 이후로 힘을 잃게 됩니다. 금본위제 아래에서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금에 딱 맞게끔 화폐를 찍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 유럽은 막대한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대량의 화폐를 발행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금 태환(금과 화폐 교환)을 금지하고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화폐를 찍어내게 됐습니다. 그 결과, 전지구적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929년의 대공황이 발생했습니다.

     

    대공황 아래에서 전 세계 국가들은 국고 파산과 뱅크런을 경험했습니다. ’ 뱅크런’(bank run)이란 경제적인 패닉 상황에서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현금을 인출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금인 ‘지급준비금’보다 더 많은 통화를 유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공황 같이 경제적인 공포가 만연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최대한 내가 들고 있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에 맡겨 놓은 모든 예치금을 현금으로 바꿉니다. 그렇게 되면 은행은 파산하게 됩니다. 당시 영국에서 많은 은행들이 뱅크런을 당했고 영국 국고의 금은 대량으로 유출되었습니다. 1931년 영국은 금본위제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이로써 기축통화의 지위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브레턴우즈 협정

    브레턴우즈 협정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미국과 영국, 소련과 같은 연합국 측이 1944년 7월 미국 브레턴우즈의 한 호텔에 모여 합의한 국제 통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협정이었습니다. 내용은 미국의 달러를 통한 금환본위제도의 운영이었습니다. ‘금환본위제도’(gold exchange standard)란 단 하나의 화폐, 달러로만 금 태환을 가능하게 하자는 기준을 두고, 나머지 국가의 통화는 금과 연결되어 있는 달러와 고정환율제로 연동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금 태환 기준은 35달러당 금 1온스로 맞췄습니다.

     

    유럽에서 벌어진 대규모의 전쟁으로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전쟁 자금을 빌린 세계 각국은 보상금을 갚기 위해 금을 미국에 주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금 보유국가가 됩니다. 따라서 미국은 금환본위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국가라도 금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통화를 달러로 환전할 수밖에 없었기에 달러의 힘은 강해졌습니다. 브레턴우즈 협정은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지게 된 첫 번째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닉슨쇼크와 킹스턴 체제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유럽부흥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 마셜플랜으로 불리기도 했음)을 위한 경제원조와 1960~70년대를 아우르는 베트남 전쟁 비용을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자금 충당을 위해 달러 국채를 남발했는데 미국의 무리한 국채 남발로 달러의 가치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한 투자자들이 대량의 금을 사들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달러 시세는 추락하고 금 값은 폭등했습니다. 

     

    달러의 신용이 덩달아 추락하는 사이, 1971년 프랑스와 스위스, 스페인을 중심으로 달러를 대규모로 투매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독일은 브레턴우즈 체제를 탈퇴하고 영국은 미국에 금 상환을 요청했습니다. 절정은 1971년 8월 1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닉슨 쇼크’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 유럽 각국은 줄줄이 고정환율제가 아닌 변동환율제를 선택하고 달러 투매는 가속화되었습니다. 달러의 신용은 밑도 끝도 없이 추락했으며 미 달러 중심의 고정환율제였던 금환본위제도는 사실상 폐지되었습니다.

     

    1976년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의 IMF 회의에서 ‘각국의 경제 여건에 따라 고정환율제 혹은 변동환율제를 유동적으로 선택해서 환율제도를 결정하도록 하자’라는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킹스턴 체제’의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변동환율제가 사용되었습니다.

     

    페트로달러 시스템

    킹스턴체제 이후 변동환율제가 중심이 된 세계에서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의 군사력에 있습니다. 1973년 이슬람 혁명이 발발하는 중동에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사우디의 국왕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사우디에서 나오는 원유를 대가로 미국의 군사력으로 자국을 보호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공화정을 세우려고 하는 혁명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왕가를 보호하고 이란과 소련, 이스라엘로부터 자국을 지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미국은 이 거래를 받아들였고 이 거래는 아랍 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 같은 다른 OPEC 회원국으로도 확대되었습니다. 이로써 미국은 원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하게 하는 페트로달러(petrodollar) 시스템을 만들어냅니다. 더 이상 금이 아닌 원유를 위한 달러 거래는 각국이 다시 달러를 비축하게 했으며 달러 비축 수요가 늘어남과 동시에 달러의 신용도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미국은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중동의 산유국 사이에서 분쟁이 생길 때마다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유 결제 대금을 달러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산유국들을 상대로 보복적인 조치를 감행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이 유로 화폐로 원유를 결제하려고 시도했다가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 사건인 이라크 전쟁을 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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